4. 수레울보막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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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 연천문화원 작성일20-08-07 11:28 조회713회 댓글0건첨부파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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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레울 보막이
보막이가 처음 시작된 것은 농경사회생활에서도 벼농사를 주곡으로 삼아 물을 이용하 여 농사짓는 방법의 방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제일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수자원이었다.
그래서 하천이나 도랑을 막아 관개 용수로 끌어들여 일 년간 농사를 짓는데 필요한 시 설물을 설치하였던 것이 보막이다. 조선시대 전통적인 재래식 보막이는 대부분 하천이 나 도랑을 가로로 적당한 간격으로 말뚝을 박고 물이 고이는 위쪽에 긴 통나무들이나 소 나무 거섶을 가로질러 여기에 돌을 눌러 놓고 그 위에 흙을 덮어 한쪽에 물 흐름을 조절 하면서 수심을 높이는 것이 보통이었다.
그러나 이러한 보(堡)는 홍수가 날 때마다 유실되어 매년 되풀이 하여 보막이를 하는 것이 통례였으며 마을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음력 정월이 지나 해토가 되는 봄이면 논물을 가두고 연중행사로 보막이를 하였다.
연천의 보막이 놀이는 1994년도 청산면 대전리의 최윤식 옹에 의해 처음 발굴되어 그 9월 제9회 경기도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전하여 장려상을 수상하였다. 이 놀이에 구성된 출연진은 기수 10명, 농악(사물놀이) 22명, 농부 28명, 제관 및 선비 17명, 아낙 6명 등 총 87명의 인원이 출연하였다.
행사장막의 첫째마당은 모든 출연진들이 마을을 출발하여 동구 밖 여록에 있는 수호신 인 성황 및 장승에게 정성을 드려서 치성한다. 이때 농악 풍물패의 한바탕 놀이가 전개 되면서 보막이 장소로 이동한다. 둘째마당은 보막이가 시작되는 선창과 후창으로 농요 를 부른다.
셋째마당은 보막이가 완성되면 토지신께 풍요를 기원하는 제례를 올리고 풍악을 울리 며 즐겁게 한마당 놀이로서 종료된다. 이와 같은 놀이는 마을 공동 노동행위로 농경지가 천수답인 지역에 더욱 성행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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